델파이 타임워프 – 1995, 델파이 신화의 기원

1995년은 델파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입니다. 그 해 2월 14일, 델파이 첫 번째 버전이 출시되었죠. RAD 도구16비트 윈도우 3.1을 지원했습니다.

델파이는 볼랜드의 윈도우용 터보 파스칼에서 탈피했습니다. 터보 파스칼이 에디터, 디버거, 컴파일러, 링커, 라이브러리와 결합하고, 오브젝트 지원이 추가된 후 오브젝트 파스칼로 진화했죠. 델파이/오브젝트 파스칼은 앱 개발의 기반을 구축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델파이(Delphi)”로 불리게 하소서.

델파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됐을까요? 당시 볼랜드 개발자인 Danny Thorpe는 같은 이름의 그리스 신전을 참고해 이 이름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델파이의 목표 중 하나는 데이터베이스 연결을 제공하는 것이었고, 오라클은 당시 가장 인기가 높았던 데이터베이스 제품 중 하나였기 때문에 “오라클과 대화하려면 델파이로 가야한다“는 것이 이 이름을 제안한 이유였습니다.

우연히 볼랜드가 Borland AppBuilder라는 제품 출시를 준비중이었는데, 당시 Novell AppBuilder가 볼랜드의 출시 일자 전에 갑자기 출시되면서, 볼랜드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고 델파이라는 이름을 채택하게 됩니다. 델파이는 상징적인 이름과 더불어 앞서 나아갔습니다. 그 뒤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역사이죠.

델파이의 첫 번째 버전은 비주얼 컴포넌트 라이브러리(VCL), 비주얼 양방향 도구, 런타임 라이브러리(RTL), 디자인 타임의 데이터 인식 컴포넌트, 속성 메소드 이벤트(PME) 모델, 구조화된 예외 처리, BDE와 SQL Links를 통해 데이터베이스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1995년, 세계는?

1995년은 어떤 해였을까요? 그 해에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나시나요? 저는 당시 건축학교를 반쯤 다니고 있을 때네요. 세계적으로도 많은 뉴스가 있었습니다:

캐나다 서스캐쳐원주에 착륙한 스티브 포셋은 열기구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셴겐협정이 처음으로 발효되어 170여 개 국가가 핵확산금지조약 연장에 합의했습니다.

그 동안, 우주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우주비행사 발레리 폴랴코브는 366일을 우주에서 체류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버나드 A. 해리스 주니어는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포일은 우주를 걸은 첫 번째 영국인이 되었죠. 12월, 나사의 무인 탐사선 갈릴레오는 목성의 대기에 진입해 사진을 통해 세상의 상상력을 포착하기도 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헐리우드는 늘 그렇듯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 해에는 케빈 코스트너의 워터 월드, 데이비드 핀처의 범죄 스릴러 세븐, 최초의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가 개봉했죠.

또 다른 유명 개봉작에는 배트맨 포에버와 제임스 본드 스릴러 골든아이가 있었구요. 포레스트 검프는 최우수 영화로 오스카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앨라니스 모리셋재기드 리틀 필을, 섀기붐바스틱, 랩퍼 쿨리오갱스터 파라다이스를 발매한 해이기도 합니다.

브라우저, 게임, 인터넷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95, 비주얼 스튜디오 4.0, 인터넷 익스플로러 12를 출시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오페라 브라우저의 첫번째 버전도 이 해에 출시되었습니다. 넷스케이스 네비게이터 2.0도요.

HTML은 버전 2.0이었고, 미국 정부가 국립 과학 재단 네트워크 (NSFNET)에 자금 지원을 중단하면서 인터넷이 민영화되었습니다. 당시 소니는 첫 번째 게임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을 출시했고, 게이머들은 FIFA Soccer 96에 빠져있었죠.

1995년, 델파이가 앱 개발을 바꾸다.

아래 사진은 1995년 당시의 델파이 팩트 시트입니다. 간단히 살펴보면,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있어 델파이를 매우 변혁적인 도구로 만들어 준 많은 혁신적인 기능들은 여전히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영향력있는 기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당시 제기되었던 이슈들이며, 그 때 이미 델파이가 해소했던 것들이죠. 그리고 델파이는 지금도 이러한 이슈들을 해소해나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델파이 발전을 위한 델파이 개척자, 챔피언, 팬들의 수 년에 걸친 헌신이 있었고 델파이를 대체할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95년 델파이는 “비주얼 컴포넌트 기반 디자인의 신속 애플리케이션 개발(RAD) 이점과 확장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액세스, 최적화한 네이티브 코드 컴파일러의 강력함까지 갖춘 유일한 윈도우 개발 도구”라고 팩트시트에도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기능들 -단일 코드베이스, 멀티 네이티브 컴파일, 제품 완성까지 매우 빠르게 가능- 이 27년 전만큼 지금도 가치있다는 점을 볼 때, 이 이름의 선택은 우연의 일치라기 보다는 예언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앱 개발의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신화적인 기원을 실제로 구현했다고 볼 수 있죠. 그 이름은 바로 ‘델파이’입니다.